본문내용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전체메뉴 보기

logo : 대한민국생태수도순천logo : 대한민국생태수도순천logo : 대한민국생태수도순천logo : 대한민국생태수도순천

Home > 순천소개 > 순천의 역사 > 순천의 인물

순천의 인물

화면축소 화면확대 인쇄하기 링크복사

순천시를 빛낸 인물

순천시를 빛낸 인물
김 총 후백제 견훤에게 발탁되어 출사하였으며, 그의 벼슬이 가별감에 이르렀다. 죽은 후에는 이 고을의 성황신이 되어, 수호신으로 모시고 봄, 가을 두차례에 걸쳐 이지방의 진례산에서 제사를 모시고 있다.
박영규 순천출신으로 견훤의 사위이며 후백제와 고려 초때의 장군이다. 936년 9월 일리에서 태조가 신검을 칠 때 이에 대응하여 신검이 항복 , 후백제를 멸망케 했다 . 그공으로 좌승에 오르고 벼슬이 삼중대광에 이르렀다.[고려사,한국인명대전]
박란봉 고려때 대장군으로 벼슬이 정승 대광보국 승록대부에 이르렀고 평양 부원군에 봉해졌다. 인제산서 성을 쌓고 웅거하면서 왜구의 침입을 막았고 죽은 후에는 고을을 지키는 인제산신이 되었다는 신화적인 인물이다. 그가 최초로 순천이라는 고을을 개척하였다는 설이 있다.
차원부 자는 사평,호는 운암.공민왕때 문과에 급제 ,성리학자, 그림을 잘 그려 매화에 특기가 있었으며, 주암면 오천서원에 배향됨.
김 진 낙안읍 태생으로 공민왕때 문과에 급제 성곽경영의 전문가이었으며, 조선 이태조가 도읍을 옮길 때, 종묘 궁궐을 짓는데 공이 많음. [고려사, 태조실록]
김빈길 조선 태조 때의 무신 , 호는 죽강 ,시호는 양혜, 낙안태생으로 군공을 세워 말단으로부터 출세하여 달관에 이르렀다. 1397(태조 6년) 왜구가 침입하였으나 관민이 아무 대책이 없자 그는 의병을 일으켜 멸악산 아래서 수 천명의 목을 자르고 남해와 사천까지 추격하여 대 승리를 거두었다. 그후 전라도 수군 절도사로 임명되었다.
조 유 옥천부원군 원길의 아들. 고려말 진사에 급제 육전농부정 역임. 조선태조에 순창에서 살다가 주암면 겸천으로 이사함.
김종서 자는 국경, 호는 절재 , 본관 순천. 1405년(태종5)문과에 급제 1451년 우의정에 오르고 , 1452년 세종실록의 총재관을 거쳐 고려사절요의 편찬을 감수하여 간행. 우리고장 출신 이라 하나 충분한 기록은 없고 주암면 겸천서원에 배향됨.
박중림 호는 한석당. 1423년 식년문과에,1427년 문과중시에 급제, 세종 때 집현전 학자, 공조참판. 이조판서. 1456년 아들 팽년과 함께 단종을 복위시키려다가 사형됨. 주암면 죽림리의 겸천서원 에 배향.
박팽년 자는 인수, 호는 취금현. 1424년(세종16년) 알성문과에 급제 성삼문과 함께 집현전 학사. 주암면 겸천서원에 배향.
조지산 1434년 (세종 16년) 무과에 급제하고 절충장군 , 첨지중추를 역임하였다, 나라를 위하여 진충청절하며 단종을 복위하려다 사육신과 더불어 동시에 순절하였다. 1470년(성종1년)에 자헌대부를 가하고 특명으로 영정을 사사받았다.
조숭문 자는 무백, 호는 죽촌. 지조와 절개가 굳고 의롭지 못한일을 보면 곧잘 의분한 성품. 세종 때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병마절도사에 이르렀다. 단종복위를 꾀하였으나 밀고되어 사형 됨.
조철산 자는 진향, 호는 구천. 1455년(세종1년) 단종복위 운동을 벌였으나 밀고되어 사형됨.
신윤보 자는 비경 ,호는 오림정,1470년(성종1년)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도사에 오림정을 짓고 포구에 솔, 매화,복숭아,유자,대 등 다섯종류의 나무를 심고 5림이라고 정자의 현판을 내 걸었는데 지금도 이 마을을 오림정이라고 부르고 있다.
조 위 자는 태허, 호는 매계. 1474년 식년문과에 합격,1493년에 호조참판이 되었으며, 순천에서 유배생활 ,옥천동에 임청대를 지음.
김굉필 자는대유,호는 한훤당. 1498년 무오사화때 김종직의 일파로 몰려 순천으로 귀양살이를 왔음. 옥천서원에 제향. 시호를 문경이라 내림.
장자강 자는 가거 , 진주 태생.1501년 (연산7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순천고수관이 됨.
박 상 자는 창세 , 호는 눌재 . 1501년(연산 7년)식년문과에 을과로 합격, 교서관 박사등을 역임 1515년 중종반정으로 폐위된 단경왕후 신씨의 복위를 상소하다 왕의 노여움으로 조림역에 유배됨, 1517년 순천부사로 재직. 청백리의 녹하고 문장가로 서거정이후 4대가로 알려짐. 판서에 추증됨.
양팽손 자는 대춘, 호는 학포, 승주태생, 1510년생원시에 합격, 1516년(중종11년)에 문과에 급제, 1519(중종14년)교리로 재직, 현령을 지냄, 글씨가 명필이었음.
박세희 1514년 별시문과에 장원급제, 상사면 동백리에 소재한 이천서원에 주향으로 배향됨.
장응두 자는 언중, 호는 송탄, 1514년 순천출생, 중종때 생원문과에 합격하였으며,임란공신으로 녹권을 하사받고 김춘남등과 더불어 수문장 원량에 선무원종공신 2등훈으로 대사헌 이조 판서를 제수 하였다. 조정암과 같이 어울리면서 도의계를 만들고 닦은 명현중의 한사람 으로 장수 창계서원에 배향.
이 정 자는 강이, 호는 구암, 1536년(중종31)문과에 장원급제, 삼사의 벼슬을 거쳐 경주부윤이 됨. 1562-1565년 순천부사로 재임. 성리학에 밝았으며 저서로 구암록, 경현록이 있음.
심통원 자는 사용, 호는 욱재, 1537년(중종 32년)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여 1543년(중종38년) 승평 태수로 재임시 환선정 창건.
노수신 자는 과해 ,호는 소재.1543년 무과에 장원.1545년 순천으로 유배.
배 숙 자는 수옥, 호는 매곡, 1546년(명종1년)에 진사를 지냈다. 명종때 성균관에 있으면서 상소 하여 요망스러운 승 보우를 배척하였으며 부에 와서 승평교수관이 되어 훈도와 도학을 강구하였다. 승평 4은의 한사람.
김응남 1546년 순천 출생, 문과 급제,동부승지,대사헌,이조참판 역임, 정묘호란때 세자를 호행 하고 강화도를 지키다가 사태가 위급하자 분신자살. 좌의정을 거쳤으며 시호를 충의라 내리고 호성공 일등훈에 봉함.
장응익 자는 언추. 1554년 (명종9년) 무과에 등제하여 벼슬이 선전관에 이름. 어회장군으로 옥포 만호를 역임.
김여물 자는 사수, 호는 파구자, 순천태생으로 김훈의 아들이다. 1567년에 진사가 되고 10년 뒤 문과에 급제하여 1583년 이 고을의 부사를 역임하였다, 1584년 영의정이 됨.
정사익 자는 포당, 학문에 조예가 깊고 덕행이 뛰어나 이 고장의 승평4은의 한사람으로 꼽혔다. 한훤당 김굉필을 추모하여 경현당을 중수하는데 공로가 많았으며, 그후 스승 구암 이정이 세상을 타계하니 서러움을 달래지 못해 몸소 글을 지어 제사를 모시기도 하였다.
(승평 4은= 정사익, 배숙, 정소, 허엄)
허 엄 자는 구숙, 호는 강호, 1568년(선조1년) 생원과 진사를 지냈다. 임청대에서 배매곡, 정청 사, 정포당과 함께 도를 논하고 의를 구하니 당시에 승평4은이라 칭했다.
정 소 18세때 사마시에 합격, 정사를 중심으로 승평4은과 더불어 서로 사귀었으며, 그가 죽자 구 곡수에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냈는데 그 후 청사사는 조례동으로 옮겨졌다. 현재 곡수서원 이라 이름하여 주향으로 배향.
정시관 자는 옥이, 호는 난헌, 성리학에 밝았으며, 당시 승평8문장중의 한사람.
강복성 자는 명지,1579년 (선조12년)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1618-1620년 순천부사 재임. 1619년에 연자루 다시 지음.
최만갑 자는 공식, 호는 우곡, 그의 시는 격이 높고 음조가 화창하여 과거초시에 여러차례 합격. 승평 8문장중의 한사람.
황일구 승평8문장중의 한 사람, 해룡면 해촌에서 살았으며, 성품이 밝고 문장이 뛰어났다.
양명웅 자는 세장, 호는 창랑, 무과에 급제하여 방북관에 취임하였으며, 문예가 뛰어나 대성을 이루었고, 3차에 걸쳐 실시된 향시에 응시 세 번 다 장원을 함. 승평8문장중의 한사람.
정 빈 자는 공백, 호는 곡구, 승평4은 정사익의 아들로 벼슬이 주부와 감찰에 올라,낭천,직산, 전의 아산등지의 원을 역임하면서 치적을 쌓아 청덕비가 있다.
정 운 자는 창진,무과에 급제하여 1592년(선조25년) 임진왜란때 이순신의 선봉장이 되어 전과를 올렸으며,해룡면 신성포 충무사에 배향됨.시호 충장.
송희립 자는 신중,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활약, 고흥출신이며 신성포 충무사에 배향됨.
박증손 자는대이 ,호는 운곡. 이고장에서 살면서 향중에 있는 자제들을 모아 도덕을 가르치고 수 제자들을 낳음. 상사면 동백리의 이천서원에 배향됨.
정 하 자는 경화, 호는 석란, 승평8문장중의 한사람으로 명예는 널리 알려졌으나 전해내려오는 글이 없다.
허 빈 자자는 빈빈, 문장을 일찍 깨우쳐 승평 8문장의 한사람.
이덕수 자는 사노,호는 이유당.1608년 문과에 급제하여 1624년 순천부사로 역임.
정우형 자는 희경,호는 미상, 1620년에 출생, 어려서부터 문장에 뛰어났다. 과거 초시에도 여러 차례 합격, 승평8문장의 한사람이다.
조대성 자는 성지,호는 매창,이항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음. 조례동 곡수서원에 배향.
이 현 자는자장,호는 탄옹 또는 월탄 1633년 순천부사로 재임중 연자루 중건.
정극인 호는 불우헌,다헌,태인 출신. 최초의 가사작품 상춘곡을 지음.별량면 율봉서원에 주향으로 배향.
조현범 자는 성회, 호는 장졸, 또는 삼효제, 이 고장의 특기할 만한 사적들을 모아 강남악부를 편찬. 1656년(효종7년) 주암면 오산리에서 출생. 훌륭한 책을 발간해놓고도 자기를 밝히지 않고 향리에서 조용히 살다가 흙속에 묻혀갔다.
이봉징 자는명서 ,호는 은봉 또는 해봉. 1675년 (숙종1년)에 증광문과에 장원,1688년(숙종13년) 에 순천부사 재임.
박두세 자는 사양,1682년 문과에 급제하여 목사를 거쳐 첨지중추부사에 이름, 1698년 순천부사로 재임. 옥천교와 동천교를 건립. 수필집으로 요로원 야화기,삼운통고보유 편찬.
남구명 자는 기서, 호는 우암. 1687년(숙종13년) 사마시에 합격, 6년후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순천에서 10년간 은둔생활을 하였음. 후에 순천부사로 기용됨.
박시영 자는 군수, 도사면 신월리에 살았다. 영조때 주부의 벼슬을 거쳐 선무랑을 역임 하였는데 보허사를 짓고 당시 도백의 신임을 얻었으며 승평 8문장중의 한사람.
이수광 승평지 편찬,순천부사 역임.수서원에 제향됨. 시호 문간.
엄세영 자는 윤익,호는 범재. 1864년(고종 1년)문과에 급제하여 1878-1880까지 순천부사로 재임 하면서 밝은정사를 펼침.
서정순 자는원중,1871년 (고종8년)문과에 급제하여 1876-1878까지 순천부사에 임하면서 선정을 베품.
김종익 자는 경백, 호는 우석, 1886년 월등면 대평리에서 출생, 인재양성에 헌신한 애국지사. 목초 육영회 라는 장학회를 설립하여 불우한 학생들을 보조해 인재를 배양. 사회 복지 사업에 손을 써 당시 적십자사와 불우한 나병협회 등에 거액을 희사. 순천농업학교를 설립,1936년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설립, 1937년 51세를 일기로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기고 타계하였다.
  • 불우한 한국 학도들에게 학비를 대줄것
  • 순천농업학교를 갑종학교로 승격시킬것
  • 순천 남녀 고등학교를 설립해줄것 등이었는데 그의 유언대로 모두 이행했다.
김양수 호는 약영, 1901년 순천에서 출생, 이 지방의 선각자이며 애국투사. 민족운동을 벌여 일제에 투쟁하는 방법으로 조선어학회에 관여해 왔다. 8.15 해방과 더불어 초대 순천 군수를 역임, 1950년 순천지구 국민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으며 우리 고장의 정치 면에 종주적인 인물로 손 꼽을수 있다.
성동준 호는 유정, 1912년 행동에서 출생, 독립운동가였으며, 1946년 영암군수를 초임으로 나주 군수, 순천군수들을 역임, 1965년 문교부 차관으로 발탁, 삼산, 이수중학교를 설립하는데 큰 공훈을 남겼고 제 3대 전남교육감을 역임한바 있음.

QR CODE

오른쪽 QR Code 이미지를 스마트폰에 인식시키면 자동으로 이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이 QR Code는 현재 페이지 의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현재페이지로 연결되는 QR코드

현재페이지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만족도결과보기

공공누리의 제4유형

[출처표시-비상업적-변경금지]
출처표시/비상업적 이용만 가능/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

콘텐츠 담당부서 :
문화예술과
전화 :/
061-749-6677
콘텐츠 최종 수정일 : /
2018-11-05